책과 독서, 우리말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를 읽었다.

Illinois 2005. 8. 25. 16:25

 

나는 이 시대를 어떻게 살고 있는가.
사람 사는 세상이란 그저 다 그런 거라는, 도피하는 이기심과 자위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애정, 사람에게 향하는 책임과 도리, 이타심, 이러한 것들은 이미 삭아버리고 사전에나 남아 있는 말들이 된 것은 아닌가.
사람은, 어쩌면 너무나 약아버린 습성이 몸에 밴 듯한다.
'적어도 손해를 보며 살진 않겠다.' 사실 이는 얼마나 사람의 사이를 멀어지게 하고 신뢰를 무너뜨리는 말이겠는가.
이 세상은 피할 수 없는 공동체의 삶으로 이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너무나 그러한 가치를 우습게 여기며 스스로 그것을 깨는 데 자연스러워져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러한, 어찌보면 우주적 질서라 할 수도 있을 터인, 세상의 질서를 무너뜨리면서도 너무나도 태연자약하다. 내가 밀어 넘어뜨린 아이가 아니라는 이유로, 넘어진 아이의 아픔을 그대로 보는 데 참으로 익숙한 세상이다.

성석제의 단편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를 읽으며, 몇 년 전 읽었던 '해파리에 관한 명상'이라는 소설이 떠오른다.
이순원이라는 작가의 칠팔 년 전쯤의 작품으로 기억하는 소설인데, 몸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고 흐느적거려 해파리라는 별칭으로 부르던 인물. 항상 남의 일에 자신을 돌보지 않던, '제대로 된' 이성을 지닌 비지성인.
자기 선전의 시대니, 신자유니 하는 구호가 우리를 얼마나 당돌하게 만드는 줄 스스로도 잘 모르는 우리에게 참인간의 모습을 비추어 준 황만근 선생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우리는 그 동안 많은 것을 잊고,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허망한 믿음에 기초하며 살았지 않은가.
사람이 살아가는 법, 사람의 모습을 알려준 선생의 모습이 그립고, 이 시대에 대해 다시 한번 좌절하지 않는 회의를 느껴본다.

 

- 2005년 5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