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독서, 우리말

[책을 보듬다] 감자밭등 이야기

Illinois 2007. 5. 16. 16:52

제가 써본 글입니다. 문예지평 6월호에도 있습니다.

 


책을 보듬다  

 


감자밭등 이야기

 

이런 이야기를 좋아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지나간 이야기를 한다는 게 아무래도 요즘 세상에는 어울리지 않는 듯도 하고, 더욱이 그러한 얘기는 자칫 거꾸로 가는 사람으로 비치기 마련이니 말입니다. 그저 가볍게 들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지금도 계속 되는 사람세상 얘기일 테니까요.


 숲을 찾아 갑니다. 사람이 드문 곳, 아주 가끔, 강원도 깊은 산의 길 없는 곳을 다니곤 하지요. 도시의 산에서는 한적함을 느끼기 어려워 찾는 것이지만, 그러한 곳에선 어떤 때는 머리털이 쭈뼛하리만큼 적막하고 날짐승의 부스럭대는 소리가 외려 반갑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바로 그러한 적막함 속에서 삶을 살아가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았는지 지금에서 자세히 알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단지 전해들을 뿐이지요.

험난한 산의 중턱이며 계곡 근처에 돌무더기가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해발 천 미터가 넘는 고지에도 그러한 흔적이 종종 있습니다. 그것들은 삼십 년, 사십 년 전의 기록입니다. 흔적들은 산 아래 멀리서도 알 수가 있답니다. 강원도의 높고 깊은 산을 바라보면서 조금은 이상하다 생각되는 것 중 하나가, 그 험하고 높은 곳에 잎갈나무가1) 꽤나 많이 자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잎갈나무라면 남한에서는 거의 자생하지는 않으니 조림한 것이 맞을 터인데, 천연숲이어야 마땅할 그러한 곳들이 조림한 곳이라니요. 허 참, 예전에는 아무리 산이 헐벗었다 하더라도 조금은 이상한 일입니다. 그렇지만 그도 그런 것이, 바로 그 자리들 또한 사람들의 터였던 것입니다. 지금은 전설처럼만 알고 있는 화전민들이 살던 곳이지요. 산에 불을 놓아 밭을 일구고, 몇 년을 부쳐먹다 땅심이 떨어지면 다른 곳에 불을 놓고... 그렇게 그 척박한 곳에서 살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오대산 꼭대기 비로봉과 이어있는 호령봉의 마루에서 서북사면 돌비탈을 따라 조금을 내려오면 평지와도 같이 아주 굼뜨게 흘러내리는 풀밭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해발 천삼백 미터가 넘는 곳에 있는 묵정밭입니다. 밭 자락 아래는 찌걱찌걱 물이 솟는 조그만 샘이 있는데, 내린천이 시작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한강이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지요. 이 물은 흘러서 인제를 거쳐 한강으로 가고요, 산마루 건너편에 한강 발원지라는 우통수는 진부로 해서 정선, 결국에는 한강으로 흘러들어갑니다. 주변에는 드문드문 키 작은 돌배나무도 예전의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아마도 고지이다 보니 그 자리에 아직은 숲이 만들어지지 않았나 봅니다. 산 아래 사람들은 그 곳을 감자밭등이라고 일컫는데, 듣기로는 70년대 언제까지도 한 분이 감자밭을 일구며 살았다고 하더군요.

서너 집 모여 살기도 하고 '웰컴 투 동막골'이라는 영화에서처럼 마을을 이루어 살기도 합니다. 감자밭등에서처럼 멀리 외따로 사는 분도 있고요.


그 곳의 겨울은 참으로 깁니다. 그것은 단지 추운 날이 길다는 것이 아니라 집밖으로 나갈 수 없는 날이 길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지요. 통상 11월 하순이 되면 눈이 쌓여 마을과 오고 갈 수 없으니 시월 중순 눈이 오기 전에 겨울 날 준비를 다 해야 합니다. 일구어놓았던 것들은 이미 거두어서 밭은 비어 있고, 당귀, 만삼 등 약초 따위로는 이번 장날 마을로 내려가 쌀을 팔아 와야 합니다. 그러께는 운이 좋게도 작은 것이나마 심을 서너 채 보아 살림 몇 가지를 들였지만 그런 행운이 또 다시 있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표고는 귀퉁이 얼럭2)에 잘 말려 채독 한쪽에 넣어두었고, 느타리3)는 주루막4)에 넣어 물속에 넣어 두었습니다. 그래야 버섯 속에 살림을 차린 벌레들을 솎아낼 수 있으니까요. 그런 후 꼬챙이에 줄줄이 꿰어 말려야 합니다. 없는 살림에 그것도 겨울을 나는 데 나름 먹거리가 될 터입니다. 봄철에 말려두었던 곰취며 병풍취5), 청옥취6), 당귀싹은 이미 광에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고, 감자는 장날에 지어 나른 것 말고도 겨울을 나리만큼은 남겨두었습니다. 감자와 나물죽을 겨우내 먹다 보면 어린 자식들이야 투덜대기 십상이지만 그렇게 살아왔고 또 살아가야 합니다. 희망도 절망이란 것도 없습니다. 그런 말의 의미는 견줄 것이 있을 때 새겨지는 법일 것이고, 지금은 그저 겨울을 나야 합니다.

이제 겨울에는 멀리 가지를 못합니다. 그렇다고 마냥 집구석에만 있는 건 아니지요. 2월에는 쌓이고 쌓인 눈이 너무 깊어 정말 옴짝달싹할 수야 없지만, 너무 큰눈만 오지 않는다면 1월까지는 주위에서 돼지나 토끼, 노루를 잡습니다. 그리고 짬짬이 다래끼며 삼태기, 광주리 같은 도구들도 엮어두어야 합니다. 산에서는 해가 짧은 법이지요. 그런데 겨울밤이면 산 아래 마을에 있던 친구며 이런저런 생각이 납니다. 그놈의 달빛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름에는 나무에 가려 잘 보이지도 않던 별빛이며 달빛이 겨울에는 나뭇잎이 지고 하늘이 훤히 뚫린 데다 쌓인 눈까지도 빛을 내어 어떤 날은 밤이라도 밤 같지를 않습니다. 대처에 간 그 친구는 뭘 하며 살고 있는지, 막걸리라도 한사발 생각이 날 때면 더욱 그려집니다. 산기슭에서 요사이 보았던 제무씬7)가 하는 추럭을 타고 읍내로 갔다가 서울로 간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산 아래서 들리는 얘기로는 산에 사는 사람들을 곧 끄집어 내린답니다. 무슨 얘긴지는 모르겠지만 산에 불을 놓고 밭을 일구는 걸 나라에서 못하게 한다는 겁니다. 지난겨울 북쪽에서 온 공빈가 하는 군인들에게 큰고개 너머의 산사람들이 아이까지 해서 몇 죽어나간 후로 그런 얘기는 더 자주 들립니다. 하지만 별 도리가 없습니다. 아버지 대에 산에 든 후로 다른 곳은 알지도 못하고 어디 땅 한 뙈기라도 마련하기 어려우니 말입니다. 게다가 다른 재주라곤 없으니 막상 어디를 간다 하더라도 덜컥 겁부터 납니다. 그렇게 겨울밤이 깊어지고 겨울도 묵어갑니다. 그리고 생강나무 노란 꽃망울이 산 밑자락부터 피어오르기만을 기다리지요. 그렇게 봄이 오면 이번에 벌채하여 논 건너 자락 노푸터8)를 일구어야 하니까요.


큰앵초(높은 산에 주로 있다 하여 속칭 ‘고산앵초’라고도 함.) - 사진은 마음대로 쓰세요.


시간은 어떻게 지나는 것일까요? 그들에게 시간은 어땠을지 모르겠습니다. 멈추어진 듯한 시간에서 해와 달을 보며, 산 속의 운무 속에서 산 사람들.

1966년 4월 23일에는 <화전정리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공포되었고, 1972년부터 화전민 이주사업이 본격화 되었다고 합니다. 그 중 1968년 10월말에 벌어진(12월에 끝남)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은 화전민들을 이주시키는 데 좋은 빌미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단기간에 완결되지는 않았고 70년대 후반에 가서야 거의 모든 화전민들을 이주시킬 수 있었지요. 그러나 지금도 멀리 가지 않고 산자락에 사시는 분도 계시고, 독가촌9)을 형성하여 사시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런 기억들을 가지고 있는 꽤 많은 후예들도 계실 것입니다. 지난 늦여름에 정선과 진부 경계에 있는 인적 드문 산을 계곡으로 오르는 길이었습니다. 두 분이 풀 베는 기계를 들고 꼭대기 부근에서 내려오더군요. 엉뚱하게도 그런 곳에 웬 산소가 있으려고요. 서울에 사시는 분인데, 바로 할아버지 산소를 돌보고 오는 중이었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꼭 거기에 자신을 묻어달라고 하였답니다.

별 먹거리가 없던 그 시절을 지긋지긋해 하는 분도 계십니다. 어떤 분은 기억이 아련하기만 하겠지요. 지난 것은 아름답다고, 그 때를 떠올리고 지금의 자신을 비추며 눈물을 글썽이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지금 그 곳에선 고산앵초가 참으로 예쁘게 피어있을 것입니다.


 서울이란 곳에 살다보면, 사람은 이 거대도시의 공기에 눌려 왜소해진다는 느낌을 종종 받습니다. 아니, 그런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 사실일 것입니다. 활기찬 듯 보이지만, 그렇게 보이고 싶지만, 실제 현대 도시민들은 매우 작고 무기력하며, 어쩔 수 없는 자괴감에 살아가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루하루를 살고, 살아남으면 그저 고마운 삶이라고 자위하며 사는 것은 아닌가 느껴집니다. 한 인간의 힘이 얼마나 되려고요.

하지만 한 개인이라 하여서 그렇게 작은 존재이기만 할까. 꼭 ‘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는 식의 도전이 아니더라도 사람은 세상에 즐겁고 아름다운 변화를 줄 수 있는, ‘꽃보다 아름다운’ 존재일 것이라는 믿음을 갖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인간형으로 ‘엘제아르 부피에’라는 양치기 노인을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나무를 심은 사람(장 지오노, 두레)>의 주인공입니다. 이 글은 1953년 「리더스 다이제스트」지에 처음 소개되었는데, 지금은 10여 개 나라에서 단행본으로 출판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출판된 것이 1995년이라서 그런지, 그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성인들은 잘 모르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더군요. 중고등학생들의 필독도서니 권장도서니 하는 목록에는 항상 한 자리를 차지하는 책인데도 말입니다. 묶어서 권하는 식의 책읽기는 바라는 바가 아니지만, 이 책은 꼭 예외로 하고 싶은 몇 권 중 하나입니다. 장 지오노가 "사람들로 하여금 나무를 사랑하게 하기 위해, 더 정확히 말한다면 '나무를 심는 것을 사랑하게 하기 위해' 나는 이 작품을 썼다."고 말함에도, 그 단순한 목적 이상으로 세상에 밝고 희망적인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리더스 다이제스트」지에 소개되었다는 것에서 대략 추측하는 분도 계시겠지만 매우 짧고 쉽게 읽을 수 있는 글입니다. 하지만 글이 주는 무게는 어떤 대하소설보다도 가볍지 않다는 것을 느끼실 수 있습니다. 혹시 문자보다는 영상이라야 한다면, 비디오로 볼 수도 있답니다. 그 책에 감동을 받은 캐나다의 애니메이션 작가인, 직업이 그것만은 아니었지만, 프레데릭 바크란 분이 제작한 30분짜리 영상물 <나무를 심은 사람>입니다. 아카데미도 좋게 생각하였는지 그에게 단편상이라는 영광을 안겨주었지요.


나무를 자르고 태우며 산 사람들과, 나무를 심으며 산 사람에 대하여 이야기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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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깔나무 또는 낙엽송이라 하며, 침엽수인데 상록수가 아니고 잎을 간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조림한 나무는 다 일본잎갈나무(잎갈나무와 구분하여 '낙엽송')이며, 우리나라의 잎갈나무는 금강산 이북에서 자란다고 한다. 남한에는 자연상태에서 몇 그루 정도만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 곡식단을 말리는 데 쓰는 갈무리 도구.

3) 느타리라고는 하지만 그러한 고지 깊은 곳에서 자라는 버섯은 대부분이 참부채버섯으로, 느타리와는 구별된다.

4) 주둥이를 배낭처럼 조여서 양 어깨에 맬 수 있게 만든 운반용구.

5) 어리병풍.

6) 서덜취.

7) GMC 트럭을 말하는 것인데 주로 6.25전쟁 이후 미군이 쓰던 것이 남겨졌다. 강원도, 경북 등 산골에는 아직 목재 운반용으로 운행하는 차량이 몇 대 있다.

8) 산정 부근에 있는 화전.

9) 산악에서 드문드문 흩어져 살던 사람들이 산자락 아래 모여 만든 마을.